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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지브리의 꿈을 해킹하다: 앤쓰로픽과 메타 저작권 소송 판결


‘지브리 스타일’로 만들어진 이미지들
지난 3월, AI와 저작권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이 ‘지브리 스타일로 XXX 그려줘’라는 프롬프트와 함께 뜨겁게 달아올랐던 것, 모두들 기억하실 겁니다.
당시 출시된 챗GPT-4o의 이미지 생성 기능이, 특히 ‘스튜디오 지브리풍’ 그림이 SNS와 뉴스로 급속히 확산되면서 전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됐죠. 샘 알트만이 자기 사진을 지브리풍으로 만들어서 공개하고, 인도 정부가 모디 총리 사진을 지브리 스타일로 바꿔서 게시하는 등 대표 이미지들이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1주일 만에 7억 장 이상의 이미지가 생성된 것으로 알려진, 이 대중적인 유행 속에서 ‘창작자의 동의가 없는 스타일 모방은 저작권 침해가 아닌가’라는 논란도 커졌구요.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감독 이시타니 메구니는 “지브리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라고 하면서 “지브리가 싸구려 취급받는 것을 참을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고, 미술가 카를라 오르티즈도 “AI 기업들이 예술가의 생계는 무시한 채 지브리의 브랜드와 이름을 착취하고 있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지브리풍 이미지 열풍’은 일반 대중의 관심을 통해서 AI 저작권 문제의 복잡성을 부각시키는 이벤트가 되었습니다.
그 후, 3개월여 지난 바로 며칠 전,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에서, 작가들이 제기한 앤쓰로픽에 대한 소송 (Bartz v. Anthropic)에서 정당하게 구매한 책을 AI 학습에 활용한 것은 저작권법 상 ‘공정 이용 (Fair Use)’이라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번 판결, 그리고 전에 전세계를 강타했던 ‘지브리 사태’는, 단순한 기술적 이슈를 넘어서 우리가 앞으로 AI가 만들어지고 사용되는 환경에서 어떤 사회적인 합의, 그리고 공생의 전략을 세워가야 할지 묻고 있습니다.
앤쓰로픽 소송의 판결 요약과 주요 쟁점
이번 소송을 맡은 William Alsup 연방 판사는, 앤쓰로픽이 합법적으로 구매한 책을 디지털로 전환, AI 모델의 학습에 사용한 건 공정 이용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모두가 책을 읽고 새로운 글을 씁니다…매번 책을 볼 때마다 비용을 다시 내게 하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AI도 사람 독자처럼, 원작을 참고해서 다른 걸 창조하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반면에, 불법 복제본 저장은 별도의 용도로 간주해서 이 경우는 공정 이용이 아니라고 판시했습니다. 법원은 이후 12월에, 불법 복제 부분의 손해배상 재판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이 판결은, 오직 ‘학습 과정에서의 저작물 사용’만을 다룬 것이고, 챗봇 - 또는 생성형 AI 서비스 - 의 출력물 (생성된 답변)의 저작권 침해 여부는 판단 대상에 포함된 것이 아닙니다.
지난 글에서는 구글 북스를 둘러싼 소송 사례, 그리고 이 구글 북스 소송 사례와 생성형 AI 서비스의 차이점을 놓고 잠재적인 쟁점을 살펴봤는데요, 오늘은 며칠 전 나온 판결에서 지난 번에 살펴본 주요 쟁점별로 어떤 판시나 언급을 하고 있는지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쟁점 | 지난 번 생각해 본 잠재 쟁점 | 이번 판결에서의 판단 |
---|---|---|
산출물(Output)의 존재와 성격 | AI는 학습 단계 이후에 ‘창작물’을 생성 출력하는데, 생성형 AI는 학습 데이터를 바탕으로 원본과 동일한 형태의 결과물을 무한히 만들어낼 수 있음. AI는 분석 대상이었던 저작물과 같은 종류의 컨텐츠를 새로 생산하는데, 이 생산물이 다시 시장에 유통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DB와는 다름. | AI 훈련 데이터를 사용하는 목적이 아주 변형적(Transformative)이고, 창의성을 촉진하겠다는 목적에 부합한다고 판단함. 실제로 학습 결과물이 원저작을 복제하는 방향보다는 새로운 형태로 나타났기 때문임. |
원 저작물과의 유사성 및 파생성 | 생성형 AI의 출력물은 일반적으로 원 저작물의 직접 발췌본은 아니지만, 내용이나 스타일에서 원 저작물과 유사한 표현이 등장할 수 있음. 특히 프롬프트에 따라 AI 모델이 학습 데이터에 있던 문장을 통째로 생성하거나, 특정 화가의 화풍을 모사한 그림을 그리는 등 원 저작물의 창작적 요소를 상당 부분 반영한 산출물이 나올 수 있음. | 엄밀하게는, 이번 판결의 경우는 AI의 학습 과정만 다뤘고, 생성된 텍스트·이미지 등의 저작권 침해 여부는 아직 법원의 판단을 받지 않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고 봄. |
시장 영향 및 대체 효과 | 생성형 AI의 출력물이 컨텐츠 시장에서 인간 창작물과 경쟁할 수 있다는 점이 구글 북스 사례와 결정적으로 다름. 많은 경우, 생성형 AI가 만들어낸 텍스트나 이미지는 사람이 만든 저작물과 유사한 용도로 소비자에게 제공될 가능성이 있음. AI 그림 생성으로 기업들은 일러스트 작가를 고용하는 대신 AI가 만든 이미지를 사용할 수 있음. 즉, AI 산출물이 원 창작자의 잠재적 수입원과 직접 충돌하는 문제가 발생 가능. | 저작물을 AI 모델의 학습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복제했고, AI 모델의 결과물이 원저작 시장을 대체하지 않았으므로 시장 영향(수요 대체) 역시 미미하다고 판단함. |
상업적 이용의 정도 | 구글 북스가 서비스 자체는 무료, 광고나 데이터로 수익을 얻는 모델이지만, 많은 생성형 AI 서비스는 직접 유료 구독을 받거나 기업 대상 상업 솔루션으로 판매되어, 훨씬 상업적 측면에서 두드러진 규모의 이익이 발생함. | 앤쓰로픽이 상업적 목적으로 데이터를 사용했기 때문에 불리하다거나, 상업적 이용의 형태나 정도가 공정이용 판단에서 결정적이었다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음. 다만, 상업적 목적이 있더라도 그 사용이 충분히 변형적이고, 원저작물의 시장을 대체하지 않는다면 공정이용이 될 수 있다는 해석임. |
데이터 사용의 투명성 및 윤리 | AI 훈련은 웹 크롤링 등을 통해서 무수한 데이터를 비공개적으로 수집하는 경우가 많고, 어느 작가의 어느 작품이 학습에 사용되는지 불투명한 경우가 많음. 또, 학습 과정에서 저작권 표기나 출처 정보가 제거되고, 결과물에도 원작자 언급이나 크레딧 부재 문제가 있음. | 이번 판결에서는, 정당하게 구매한 도서를 디지털로 전환, 복제한 경우는 모두 공정 이용으로 인정했지만, 불법 복제 700만 권을 보관한 것은 별도 용도로 봄. 즉, 훈련에 직접 필요하지 않은 복제 도서를 대규모로 소장하는 것은 공정 이용을 넘는 침해 행위가 될 수 있다고 봄. |
메타의 저작권 소송 결과
역시 며칠 전인 2025년 6월 2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이 메타(Meta)가 Llama AI 모델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저작권이 있는 책들을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13명의 작가들이 제기한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 메타의 손을 들어준 뉴스가 보도됐는데요.
메타의 손을 들어주긴 했지만, 이 판결의 뉘앙스는 앤쓰로픽 소송의 경우와는 조금 다릅니다:
판결에서 Vince Chhabria 판사는 메타의 AI 훈련 목적이 ‘매우 변형적(highly transformative)’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저작물을 단순히 복제·유통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로 전환해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데 썼다는 점은 인정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판결은 메타의 행위가 원칙적으로 합법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이번 사건에서 원고들이 메타의 행위가 시장에 실질적 피해를 끼쳤다는 ‘의미 있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해서 패소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판사는 “향후 더 강력한 증거와 논리로 다시 소송이 제기된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하면서,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AI 훈련에 저작물을 사용하는 것이 많은 경우에 불법으로 판단될 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했습니다.
향후 예상되는 정책 환경과 흐름
이번 앤쓰로픽에 대한 소송의 판결은 아마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 여러 나라에서 AI 학습용 데이터의 저작권 처리 방식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은 이전부터의 흐름을 유지하면서 여전히 공정 이용의 원칙(Principle of Fair Use)을 중심으로 판단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다수의 저작권 소송이 법원에 계류 중인 상태구요. 영국에서는 ‘저작권자가 반대하지 않는 한 AI 학습을 허용’하는 법안이 논의됐지만, 이에 대한 창작계의 강한 반발이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2025년 시행 예정인 ‘AI 기본법’을 둘러싸고 창작자 단체들이 성명서를 내면서 ‘투명성 확보’, 그리고 ‘보상 체계 마련’을 촉구하고 있죠.
전반적으로 세계 각국에서 AI를 위한 학습 데이터 허용범위를 둘러싼 논란과 입법 검토가 한창이지만, 확실한 기준이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앤쓰로픽에 대한, 그리고 메타에 대한 소송의 ‘현재 결과’는 AI 모델 개발사에게 조금 더 유리한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봐도 그리 틀린 건 아닌 듯 합니다.
제가 관심있게 봐 온 사례는 ‘일본’의 사례인데요.
흥미롭게도, 일본은 이미 AI 모델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저작권이 있는 데이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끔 허용하는 법적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2018년 저작권법 개정과 2019년 시행된 조항(특히 제30-4조)에 따라서, AI 개발자는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도 저작물을 정보 분석(데이터 마이닝, AI 훈련 등) 목적으로 폭넓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규정은 상업적·비상업적 목적을 불문하고, 심지어는 불법적으로 유통된 저작물도 정보 분석 목적으로는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아주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법이 만들어진 배경에, 일본의 특수한 상황, 그리고 전략이 있습니다:
AI 경쟁력 확보와 경제의 활성화
우리도 비슷합니다만, 일본도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인한 생산성 저하 문제를 겪고 있는데요, AI를 경제·산업을 혁신하고 부족한 노동력을 대체할 핵심 해법으로 보고 있죠.
그래서, 빠른 AI 생태계 구축을 위해 데이터 접근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저작권법을 설계했습니다.기술 혁신 가속화로 글로벌 경쟁에서 주도권 확보
미국·유럽 등에서 저작권 분쟁이 빈번해서 AI 산업 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점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죠. 이런 점을 의식해서, 일본은 ‘AI 친화적’인 저작권 정책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했다고 봅니다.이용 목적의 제한적 해석
일본에서는 AI 훈련(일종의 정보 분석)이 ‘저작물을 감상하거나 향유하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AI의 산출물이 원저작자의 시장을 침해하거나 부당한 피해를 줄 경우에는 저작권 보호가 적용될 수 있구요.
이렇게, 일본은 AI의 개발과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서 저작권자의 사전 동의 없이도 폭넓은 데이터 활용을 허용하는, 세계적으로도 아주 유연한 법적 환경을 마련해 놓고 달리고 있습니다. 물론, 최근에 창작자들의 반발이라든가 국제적인 논란이 커지면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과 한계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이냐 하는 논의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도 말씀드릴께요.
다만, 미국과 중국이 AI 패권을 다투고, 나머지 이 두 나라를 따라가려는 -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 많은 나라들이 앞다투어 엄청난 자원을 쏟아부으면서 경쟁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앞으로 어떤 나라든 AI 모델의 훈련을 극적으로 제한하게 될 방향으로 규제를 설정하고 법안을 만들게 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만, 앤쓰로픽 판결로 AI 기업들도 모델의 훈련에 사용한 데이터의 출처를 명확히 밝혀야 하고, 저작권자가 원할 경우에 ‘Opt-Out (사용 거부)’할 권리를 보장해야 할 필요성이 커진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 EU AI 법 등의 규제도 이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이구요.
개인적으로 향후의 AI와 저작권법 관련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두 가지 관전 포인트는:
구체적인 산업별로 AI와 저작권자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맞춤형 프레임웍
‘시장의 대체’ 효과, 그리고 경제적 피해의 입증을 둘러싼 방안과 논쟁
일 거라고 봅니다.
시각 예술이냐, 음악이냐, 문학이냐 등 다양한 창작의 분야마다 창작의 방식, 저작권이 침해될 위험, 그리고 산업의 구조 등이 다 다르기 때문에, 분야별로 다른 특성을 반영해서 세부적이고 실질적인 규칙과 보호 장치 - 꼭 법적 방식이 아니라 산업적, 사회적 구조를 통해서라도 - 가 필요하고, 그리고 가능할 거다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나라가 K-팝, 드라마와 영화, 웹툰 등으로 전세계에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이 시점에, 이런 영역에서도 구체적인 기준과 사회적 합의의 모범 사례를 보이면서 다른 나라들을 리드하는 것도, AI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하나의 길일 수 있다고 보고 기대하게 됩니다.
‘여전히’ 우리 앞에 있는 질문
지난 번 글에서 예측한 것처럼, 앤쓰로픽과 메타에 대한 저작권법 소송의 일차적인 결과는, ‘AI 학습 데이터의 활용 자체는 공정 이용에 해당한다’는 방향으로 결론이 난 거라고 (개인적이지만)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큰 방향도 그와 180도 다르게 바뀐다거나 하는 건 어렵다고 보구요.
여기서 조금 더 나간다면, 저는 역시 ‘법적으로 AI 모델 훈련 데이터의 범위를 사전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AI 모델이나 이미지 생성기는 ‘도구’일 뿐입니다. 그 능력이 너무나 대단하지만, 결국 그 도구를 어떻게 쓰느냐, 즉 이 경우에 ‘어떤 출력물’을 만드는가 하는 건 ‘사용자에게 달려있는 부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칼’을 하나 만든다고 해도, 그 칼이 엄청나게 날카로워서, 무엇이든 벨 수 있다고 해서 “그런 칼은 만들면 안 된다”고 간단히 이야기해서는 안 되겠죠.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건, 여기서 ‘사용자’에는, 저작권법을 둘러싸고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저작권자, 저작권 협회, 창작자, 예술가 등도 포함된다는 겁니다. AI가 기존에 우리가 생각했던 창작의 경계를 빠르게 허물고 있는 이 시대, ‘인간만의 깊이와 진정성에 집중’하고, ‘여전히 AI가 할 수 없는 영역을 찾아서 개척’하는 것만큼, 이 엄청난 새로운 도구인 AI를 창작의 동반자로 삼아서 ‘예술’ 그 자체를 재발견, 재구성하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을 해내는 집단이, 앞으로 다가올 시대의 ‘새로운 창작자’, ‘새로운 예술가’가 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 ‘챗GPT가 만들어낸 지브리 스타일의 이미지’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는 경험’을 등가로 놓고 교환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보셨다면 친구와 동료 분들에게도 뉴스레터를 추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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