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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프코어: 소프트뱅크 품 (ARM)에 안긴, 화려했던 '엔비디아의 대항마'

또 한 번의 실패로 이어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기회를 잡아 성장할 것인가?

그래프코어 (Graphcore). 이 회사의 공동창업자이자 CTO, 사이먼 놀즈 (Simon Knowles)는 2022년 3월, “2024년까지 사람의 두뇌를 최초로 능가하는, 1억 2천만 달러 짜리 - 지금 환율로 계산하면 1,600억원 정도 - ‘Ultra Intelligence’ 컴퓨터를 만들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지난 2월만 해도, 미국의 시장데이터 업체 피치북 (Pitchbook)은 그래프코어의 상장 확률을 97%로 아주 높게 예상했는데요. 그런데 5개월 이후인 2024년 7월, 소프트뱅크가 그래프코어를 약 5억 달러에 인수한다는 소식이 발표되었습니다 - 한 때 기업가치가 28억 달러에 이르는 화려한 ‘유니콘’이었던 그래프코어가, 급여 지급도 어렵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지난 수년 동안 받은 총 투자금액보다도 작은 금액에 매각된 거죠. 사실 스타트업의 성장 경로, 자본 시장의 흐름 등에 따라서 기업 가치가 널뛰고 투자받은 금액보다 낮은 가격에 매각되거나 하는 일이 그리 드문 일은 아니죠.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거대한 플랫폼 기업들, 그리고 그 외 많은 스타트업들의 기업가치 하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엔비디아에 대항하겠다는 기치를 내걸고 시장과 투자자의 주목을 받았던 AI 칩 회사, 그래프코어의 이야기를 통해서, 엔비디아를 소위 ‘제끼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래프코어가 발표했던 ‘Ultra Intelligence’ 컴퓨터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과연 소프트뱅크는 어떤 그림을 그리면서 이 회사를 인수한 건지, 이게 손 마사요시 회장이 올 초 발표한 ‘프로젝트 이자나기 (Izanagi; イザナギ)’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 한 번 살펴봅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에서도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 ‘AI 반도체 스타트업’들에 대해서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지 한 번 생각해 볼 기회가 되면 더 좋겠습니다.

그럼, 가 볼까요?

오늘의 글 목차는 이렇습니다:

그래프코어의 초기 아이디어 - ‘엔비디아보다 한 발 앞선다’

나이젤 툰 (Nigel Toon)과 사이먼 놀즈는 둘이 공동창업했던 ‘Icera’라는 회사를 2011년 4억 3,500만 달러에 엔비디아에 매각했습니다. Icera는 모바일 통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3G 셀룰러 모뎀 칩을 전문으로 개발하는 회사였습니다. 이 회사를 잘 매각한 다음, 나이젤과 사이먼은 ‘엔비디아가 아직 시작하지 못한 뭔가를 개발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해요. 2012년부터 엔비디아를 이기려면 뭘 만들어야 할까 논의하다가, 사이먼이 ‘CPU나 GPU 같은 칩은, 여전히 사람이 가진 직관적인 능력을 모방하도록 설계된 것이 아니라서 비효율적인 점이 많고, 이 때문에 진정한 AI 개발이 막혀있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 아무래도 이런 칩들은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데 중심을 둔다기보다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하게 설계되어서 에너지 소모량도 엄청나죠. 나이젤과 사이먼 두 사람은, ‘조금 더 사람이 뇌처럼 작동해서 정보도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에너지 소모량도 줄이는’ 칩, IPU (Intelligence Processing Unit)를 설계해 보자고 마음먹습니다. 이 당시에는, 복잡한 소프트웨어를 개선하는 것보다는 하드웨어 영역의 진전을 만들어내는 것이 AI의 발전에 더 중요하다고 두 사람은 주장했죠.

2019년 한 인터뷰에서 사이먼은 “우리가 만들고 싶은 건, 숫자를 상당히 ‘부정확하게’ 다룰 수 있는 엄청난 고성능 컴퓨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재미있게 읽은 인터뷰라서 여러분도 한 번 읽어보시면 좋겠는데요. 우리가 길을 걷다가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이 내 친군지 아닌지, ‘직관적’으로 빠르게 판단을 하듯이, 사람의 뇌는 어떤 문제들을 순식간에 아주 단순화해서 빠르게 풀어내는 반면, 지금의 컴퓨터는 그 사람의 얼굴을 찾아서, 픽셀 하나하나를 비교하는 작업을 수억개의 사진과 해 낸 다음에야 ‘안녕’이라고 할 수 있는 구조라는 겁니다. 이런 ‘정확도’의 추구라는 게, 컴퓨터가 기본적으로 ‘계산기’였던 시대에는 맞는 개념이지만, AI의 시대에는 그 비효율성이 너무 커서, 데이터 처리에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될 수 밖에 없다는 거죠.

우리의 뇌에 저장된 ‘개념’들은 상당히 애매모호한 것이기는 하죠. 이런 수많은 ‘근처에 있는’ 데이터 포인트들이 모여서 희한하게도 아주 정확한 생각과 판단을 하게 된다고 사이먼이 이야기한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개념을, 대규모의 ‘비정형 (Amorphos)’ 정보 구조를 처리하는 AI의 개념과 연결해서 ‘그래프’라는 단어가 사명에도 들어가게 됩니다.

어쨌든, 그래서 이 두 사람은 다가올 AI의 시대에는 새로운 형태와 구조의 처리 장치가 필요할 거라는 결론을 내리고, AI를 위해 맞춤 설계된 처리 장치가 범용의 칩보다도 다양한 ML 태스크들을 더 잘 처리할 거라고 믿게 됐습니다.

골드만 삭스와의 인터뷰에서, 나이젤은, 당시에는 엔비디아가 그렇게 큰 회사가 아니었으니까, 둘이 세울 회사가 엔비디아의 대항마가 충분히 될 수 있다고 봤고, 마치 1970년대에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등장한 것처럼 그래프코어가 컴퓨팅을 새롭게 정의할 회사라고 생각했다고 한 바 있습니다.

Acorn Computers의 공동창업자 - Acorn Computers는 나중에 ARM이 됩니다 - 허먼 하우저 (Herman Hauser)가 초기부터 나이젤과 사이먼 두 사람에게 큰 신뢰를 나타냈고, 이 친구들이 1970년대의 CPU, 1990년대의 GPU에 이어 컴퓨팅 혁명의 세 번째 물결을 만들어내기를 바랬다고 해요.

자, 주변 환경이 이 정도 되면, 창업을 안 하는게 오히려 힘들 정도 아닌가요 ㅎㅎ ? 결국 2013년, ‘그래프코어’ 프로젝트가 스텔스 모드로 시작되고, 2016년 영국의 브리스톨에서 공식적인 출발을 알리게 됩니다. 브리스톨은 ‘Silicon Gorge’라고 부르는, 많은 기술 기업과 연구소들이 있는 곳의 한 도시로, 보통 ‘Deep Tech Powerhouse’라고 불리고, 여기 있는 회사들은 영국 정부의 재정 지원을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쉽지 않았던 출발

그런데, 기대했던 만큼 출발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공식 출범하기 이전에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다고 해요. 두 명의 공동창업자가 2015년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피치를 시작했는데, 그 때까지는 대부분의 투자자가 AI의 잠재력을 잘 몰랐고, 당연하게도 ‘AI를 위해 사용할 특별한 칩’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섣불리 동의하지 못했죠. 가끔 열정적으로 투자하려고 했던 심사역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내부심의에서 파트너들이 던지는 “AI가 뭐야?”라는 질문 하나에 털리는 상황이 되는 거죠.

저도 투자 생태계에 한 발을 들이고 있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소프트웨어와 비교해서 칩 개발에 얼마나 더 많은 돈이 듭니까? 특히 칩은 대규모의 투자가 앞단계에 이루어져야 하니, 대부분의 투자자가 그 잠재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선뜻 투자 약속을 하기가 쉬울 수가 없는 노릇이죠.

그러다가, 2016년에 확! 하고 기회가 열리게 됩니다. 우리나라에도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전이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인텔이 딥러닝 스타트업 너바나 시스템즈 (Nervana Systems)를 3억 5천만 달러에 인수했고, 구글은 직접 AI 칩을 개발하겠다는 선언을 하게 됩니다. 이 때부터 그래프코어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하늘을 찌르고 돈 싸들고 갔을 거라는 거, 안 봐도 비디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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