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uring Post Korea
- Posts
- '지브리 효과'와 AI 저작권 논쟁, 그 너머 - 우리가 던져야 할 진짜 질문
'지브리 효과'와 AI 저작권 논쟁, 그 너머 - 우리가 던져야 할 진짜 질문

개인적으로 만화, 애니메이션을 무척 좋아합니다. 특히 어렸을 때부터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는데, 중학생 시절에 500원짜리 조그만 일본 만화 해적판들 구하러 지하 상가에 자주 갔던 생각이 나네요 ^.^

(진짜 제목은 오렌지로드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지만) 해적판 ‘오렌지로드’. Image Credit: 루리웹 오렌지로드
좀 더 큰 후에는, 다양한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섭렵하는 가운데 한참동안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재미있고도 훌륭한 스토리, 애니메이션의 퀄리티와 함께 히사이시 조의 음악도 한 몫을 했던 것 같습니다. 거의 모든 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 OST 앨범을 사기도 했고, 당시 가지고 있었던 조그만 신디사이저로 음악을 따 보기도 했었습니다.
훌륭한 작품이 너무나 많은 스튜디오지만, 개인적으로 역시 최애는 ‘천공의 성 라퓨타’구요.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신다면, 여러분의 최애는 뭔가요?

천공의 성 라퓨타 (Castle in the Sky) 포스터
‘지브리 효과 (Ghibli Effect)’, 그리고 다시 떠오르는 AI 저작권 문제
지난 하루이틀, 인터넷에서는 ‘지브리 효과 (Ghibli Effect)’라고 사람들이 이름붙인 바이럴 트렌드가 뜨면서 아래와 같은 AI 이미지가 - 정치, 예술, 가족, 여행, 밈 (Meme) 등 - 엄청나게 많이 올라왔다는 것, 아마 들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지브리’ 스타일의 이미지들
‘AI 모델이, 저작권으로 보호되는 특정한 스타일이나 화풍, 작품의 특징을 쉽게, 그렇지만 정교하게 모방할 수 있게 되면서 나타나는 파급 효과’를 ‘지브리 효과’라고 이해하면 될 텐데요. 위 이미지들 대부분이, 이틀 전 오픈AI가 공개한, GPT-4o에 탑재한 새로운 Image Generator로 만든 것들입니다. 같은 스타일로 연속되는 이미지를 만들고, 캐릭터와 시나리오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웹툰 같은 걸 만들기도 좋고, 이미지에 텍스트를 추가, 편집하는 것도 잘 되고, 다양한 스타일로 이미지를 변형하는 것도 잘 되는 이 Image Generator, 꽤 괜찮게 나온 것 같으니, 궁금하신 분은 다양하게 한 번 사용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돌아가서, “이 사진의 사람들을 지브리 애니메이션 스타일로 바꿔줘”라는 프롬프트 한 문장이면 순식간에 내가 가진 사진이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린 것과 ‘비슷하게’ 나오는 순간, 이 마법같은 순간을 수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공유하게 된 건데요. 이 ‘지브리 효과’가 퍼지면서 다시 ‘AI 저작권’ - 좀 더 구체적으로는, ‘AI 모델 훈련 데이터의 저작권’ 문제 - 문제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AI 모델이 어떤 ‘스타일’을 재현하는 게 그대로 ‘저작권 침해’가 되는 건 아닌 걸로 압니다. 다만, AI 모델이 특정한 스타일을 정밀하고도 높은 수준으로, 일관적으로 복제해 낼 수 있다면, 아마 원작 - 저작권이 있는 - 을 사용해서 학습되었다는 생각을 충분히 할 수가 있죠.
‘AI 학습 데이터의 저작권’ 판단의 참고사례 - ‘구글 북스’ 판결
'“창작물을 AI 모델을 학습시키는데 사용하는 게 정당한가”의 문제는 ‘공정 이용 (Fair Use)’ -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는 저작권에 대한 특수한 경우 - 의 판단 범주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이와 관련해서 2015년 ‘구글 북스’에 대한 판례가 하나의 참고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04년 구글은 ‘세계 여러 도서관들과 협력해서 수백만권의 책을 스캔, 검색할 수 있는 온라인 DB를 만들’어서, 일반 대중의 지식에 대한 접근성을 크게 높이겠다는 ‘Google Books’ 프로젝트를 발표했는데요. 이 발표 이후, 미국 작가협회 등에서 “(작가의) 동의없는 복제는 명백한 저작권 침해”라고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10년이 넘는 소송 끝에, 결국 미국 법원은 “Google Books 프로젝트는 공익적인 정보 접근을 확대하고, 전체 - 전체 책 - 가 아니라 일부만 제공하는 것이고, 시장 대체 효과가 없다”는 골자로 ‘공정 이용 (Fair Use)’로 인정한 적이 있습니다:
‘구글 북스’의 공정 이용 판단 근거
변형적 목적
수천만 권의 책을 스캔, 텍스트 DB를 구축하고, 이용자들이 책 내용을 검색하거나 일부 미리보기를 할 수 있게 한 것은 ‘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서 공중 지식을 증진하지만 원본 저작물을 대체하지는 않는’ 새로운 서비스라고 본 것입니다. 따라서, 학술 연구와 공익적 정보 접근에 기여한다는 것이죠시장 대체성의 부재
이용자들이 책의 일부분만 볼 수 있고, 전체를 읽으려면 도서를 구매하거나 도서관에서 대여해야 하기 때문에, 원본 도서 시장을 잠식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본 겁니다. 따라서, 원 저작물의 잠재적 시장이나 가치에 실질적 영향이 없고, 오히려 도서 홍보 효과로 판매에 도움을 줄 가능성도 있다는 해석입니다.복제 정도와 그 필요성 인정
구글이 이 프로젝트에서 도서 전체를 스캔 (복제)하긴 했는데, 이건 ‘텍스트 검색’ 기능이라는 ‘변형적 목적’을 위해서 불가피한 것이고, 실제로 ‘제공한 것’은 책의 극히 일부 정보에 불과하기 때문에 결정적 불이익 요소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저작물의 성격은 변형성의 중요성에 비해 부차적
구글 북스에, 사실성이 높은 책 뿐 아니라 당연히 창작성이 높은 작품도 많죠. 보통, 창작성이 높은 작품은 공정 이용을 좁게 보지만, 이 경우 ‘창작물이라도 새로운 용도로 활용되면 공정 이용이 될 수 있다’는 법원의 해석이었습니다.전통적 의미의 파생저작물과는 다름
저작권자들은 구글 북스 프로젝트가 허락없이 책의 파생저작물을 작성한 것과 같다고 주장햇는데, 법원은 구글 북스가 표현 내용을 개작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 게 아니고, 책의 정보를 색인화한 것이라서 전통적 의미의 파생저작물과는 다르다, 즉 변형적 목적을 가진 이용은 파생저작물이 아니다라고 해석했습니다.
이 판례가 ‘정보의 접근성과 창작자 권리 간의 균형’ 관점에서 중요한 판례가 되었고, 지금도 AI의 학습 데이터 활용에 대한 법적인 일종의 기준점으로 인용되곤 한다고 해요.
‘구글 북스’와 ‘AI 학습 데이터 저작권’ 논쟁 간 유사점과 차이점
물론, 구글 북스 판례가 그대로 AI 학습데이터에 창작물을 원저작자의 허락없이 사용해도 된다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겠죠 - 이 두 가지 사이에는 구조적으로 유사한 점도, 차이점도 있으니까요.
유사한 점을 정리해 보면:

구글 북스 사례와 생성형 AI 학습 데이터 활용의 구조적 유사점
한편, 생성형 AI 모델 훈련에 학습 데이터를 활용하는게 구글 북스 사례와 구조적으로 또 다른 측면도 많이 있고, 이게 바로 법적 쟁점에서는 핵심이겠습니다:

구글 북스 사례와 생성형 AI 학습 데이터 활용의 구조적 차이점
구글 북스는 ‘표현이 아닌 정보 제공’이라는 측면에서 명백하게 ‘변형적 (Transformative)’이고 시장 침해의 성격이 적었지만, 이번 ‘지브리 효과’가 대표하는 생성형 AI 기술 훈련과 저작권자 간의 갈등의 경우에는 AI 모델이 ‘표현을 재창조’한다는 점에서 ‘공정 이용’의 경계선 사례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입력 단계만 봐서는 안 되고, 출력 단계의 결과물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까지 고려를 하게 될 거라는 겁니다.
이 논쟁이 잦아든 후에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진짜 질문
법적으로 어떤 답이 나오게 될지, 국가별로 법제라든가 입장이 다 다른 만큼 추이를 지켜봐야겠지만, 일단 ‘창작자의 권리’와 ‘혁신의 촉진’이라는 두 가지 가치의 ‘실질적인 균형’을 찾는 사회적 합의와 법적 규제의 틀이 만들어지기를 바랍니다.
특히, 사회적인 합의를 이야기하는 건, 제가 개인적으로 ‘법적으로 AI 모델 훈련 데이터의 범위를 사전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결국, AI 모델이나 이미지 생성기는 ‘도구’일 뿐입니다. 그 능력이 너무나 대단하지만, 결국 그 도구를 어떻게 쓰느냐, 즉 이 경우에 ‘어떤 출력물’을 만드는가 하는 건 ‘사용자에게 달려있는 부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칼’을 하나 만든다고 해도, 그 칼이 엄청나게 날카로워서, 무엇이든 벨 수 있다고 해서 “그런 칼은 만들면 안 된다”고 간단히 이야기해서는 안 되겠죠.
현 시점에서 AI 학습 데이터 활용 자체는 ‘공정 이용’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지만, 그렇다고 무제한적인 결론이 나지는 않을 거라고 예측해 봅니다. ‘입력 - 즉 훈련’ 단계에서는 구글 북스 프로젝트 사례처럼 변형적 이용의 논리가 어느 정도 수용될 수 있겠지만, ‘출력 결과’까지 고려한다면 저작권자의 정당한 이익, 그리고 문화 생태계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정 이용을 인정해야 할 것이고, 사용자까지를 포함한 가치사슬 관점에서 자율적인 조정, 책임있는 활용을 어떻게 촉진할 것이냐가 중요한 논점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브리’ 효과인 이유, 그리고 ‘창작’과 ‘예술’의 의미
또 하나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건, 왜 하필 ‘지브리’ 효과일까, 그리고 왜 ‘지브리 스타일’을 둘러싸고 논쟁이 일어날까 하는 겁니다. 지브리가 아니라 귀멸의 칼날 스타일, 심슨 스타일 등 얼마든지 다른 스타일의 이미지들도 수없이 올라오는데 말이죠.
인터넷에서 이 ‘지브리 효과’를 놓고 일어나는 논쟁의 양상을 보면, 한 쪽에서는 “AI 모델 덕분에 예술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졌다”는 이야기이고, 다른 한 쪽은 “지브리 효과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예술적 정신을 훼손한다”는 입장인 것 같습니다. 특히, 아래 유튜브 영상의 내용을 보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AI를 혐오했다”거나 “AI 기술을 절대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이야기들도 돌고 말이죠. 제가 이 유튜브 영상을 봤을 때는, AI로 만들었던 뭘로 만들었던, 혐오스럽게 보이는 결과물을 보고 혐오스럽다고 한 것이지, 반드시 그게 AI로 만든 것이라서 그랬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이 영상 자체도 10년도 더 된 과거의 것이라, 지금 미야자키 하야오나 지브리 스튜디오가 AI 기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구요.
다만, 미야자키 하야오, 그리고 그가 이끄는 지브리 스튜디오가 상징하는 ‘예술적 진정성’, ‘장인 정신’, 그리고 ‘인간적 가치에 대한 헌신’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단지 그 스타일만을 도구삼아서 언뜻 보기에 그 정신과 배치되거나, 또는 전혀 무관한 이미지들을 만들어 올리는 행위가 ‘예술의 가치’, ‘예술가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 같은 불편함,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모디 총리의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러시아이 대문호 톨스토이가 1897년에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에세이에서, 예술은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정의했다고 해요:
“자신이 한때 경험했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그 감정을 움직임, 선, 색채, 소리 또는 언어로 표현된 형태를 통해 전달해서, 다른 사람들이 같은 감정을 경험하게 하는 활동이 예술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적어도 수십년간 자신의 경험과 감정, 그리고 철학을 담아 ‘지브리 애니메이션’이라는 창작물을 통해서 움직임, 선, 색채, 소리와 언어로 표현해서 우리에게 전달을 해 왔다고 보면, 그런 핵심이 빠진 채 '그림의 스타일’만을 이용한 지금의 ‘지브리 스타일 밈’들은 지브리를 사랑한 어떤 사람들에게는 ‘공감’이 아니라 “이게 뭐지?”라는 불쾌감까지도 일으킬 수 있겠구나,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정해야 할, 이 기술의 자리: 월 20불짜리 필터 vs. 예술 대중화의 도구
‘지브리 효과’를 둘러싼 논쟁의 연장선상에서 더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과연 생성형 AI 기술과 도구가 예술이나 창작 활동의 의미, 그 가치를 어떻게 바꾸게 될까?’ 하는 겁니다. 오감 (五感) 뿐 아니라 논리까지 종합해서 우리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게 예술이고 창작의 과정이라고 보면, 단순히 현재의 창작 과정의 ‘결과’의 한 측면인 ‘스타일’을 순식간에 누구나 모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예술이 대중화’되는 건 아닐 겁니다.
‘인쇄술’의 발명에서 훨씬 빨랐던 동양에서보다 왜 15세기가 되어서야 금속활자를 개발한 서양에서 ‘지식의 대중화와 지식 혁명’이 꽃을 피웠을까요? 독일보다 200년 이상 먼저 금속활자를 발명한 우리나라의 경우에, 국가에서 인쇄, 출판의 권력을 쥐고 출판의 주체와 목적, 편집 기술, 수용자들의 반응까지도 모두 철저히 통제한 반면, 유럽에서는 금속활자가 발명되면서 바로 민간의 인쇄 및 출판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금속활자를 개발한 구텐베르크가 ‘성경책’을 출판했지만 실패하고, 이탈리아 출신의 학자이자 출판인 알두스 마누티우스가 전문적인 편집 체계 도입, 누구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읽을 수 있는 페이퍼백 발명, 읽기 편하면서 아름다운 ‘이탤릭체’의 개발 등을 통해서 본격적인 의미의 ‘지식 대중화’가 시작된 것이죠.

1500년 알두스가 출판한 “Letters of St. Catherine of Siena”. 이탤릭체가 사용 - 삽화 내 인물의 오른쪽 손에 든 책의 단어들 - 된 최초의 출판물. Image Credit: Tipoteca
그런 의미에서, ‘지브리 효과’가 다시 모두에게 상기시키고 있는 ‘AI 학습 데이터의 저작권’과 ‘예술의 대중화’에 대한 논의에서 우리가 깊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 이런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성형 AI 기술이 ‘예술’과 ‘창작’의 모습, 그 가치를 어떻게 바꿀 것이고, 새로운 세대를 위한 ‘예술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까?”
“오픈AI, 구글같은 소수 거대 AI 기업의 관점에서 저작권자들과 합의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되는 걸까?”
“알두스가 인쇄 출판의 모습을 혁신해서 지식의 대중화를 이끈 것처럼, 창작의 모습을 혁신해서 예술의 대중화를 이끌 플레이어들이 많이 나타나려면 난 뭘 해야 할까?”
이런 고민이 없이는, 수조원 이상의 엄청난 투자를 앞으로도 계속 하게 될 이 ‘세상을 바꿀 기술’이 한낱 ‘월 20달러짜리 필터 앱’,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될 테니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보셨다면 친구와 동료 분들에게도 뉴스레터를 추천해 주세요.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