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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일자리를 없앤다? 진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건, ‘일의 해체와 재구성'이다

들어가며
요즘 누구와 이야기를 하든, 어떤 뉴스를 보든, AI가 논의의 주제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는 찾기 힘듭니다. 엄청난 양의 정보를 빠르고 쉽게 찾게 하거나, 새로운 컨텐츠를 만들거나, 내가 몰랐던 토픽에 대해서 공부를 하거나, 아니면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서 의사결정을 도와주는데 이르기까지,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정말 어려웠던 방식으로 AI가 우리의 삶에 점점 더 깊이 들어오고 있죠.
이렇게 새로운 기술, 새로운 뭔가가 빠르게 도입되는 그 이면(裏面)에는, 보다 미묘한 긴장감과 간극이 커져만 갑니다. AI가 보여주는 엄청난 속도의 진화 때문에 AI가 일상이 되고 있지만, 우리 모두가 ‘함께 가고 있는 건 아니’니까요.
BCG에서 발간한 AI at Work 보고서를 보면:
AI의 도입은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전체 응답자의 72%가 생성형 AI를 정기적으로 사용
특히 관리자(88%), 리더(85%)는 사용률이 높지만, 현장 직원(51%)은 정체
인도(92%), 중동(78%), 브라질/스페인/남아공(68~76%) 등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높은 채택률을 보임
직업 상실에 대한 우려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전체 응답자의 41%가 “향후 10년 안에 내 일자리가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고 응답
특히 AI 채택률이 높은 국가일수록 불안감이 더 큼
스페인 61%, 중동 63%, 인도 48%
미국 33%, 일본 40%, 한국은 포함되지 않음
이런 ‘일자리 상실’에 대한 우려, 두려움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죠: 지난 몇 개월간 ‘AI 기반 자동화 - 특히 코딩 영역이 엄청났죠 - 로 빅테크를 비롯한 수많은 회사들이 사람을 더 이상 뽑지 않겠다, 대규모 해고를 한다는 소식들이 엄청나게 많이 들렸잖아요?

2025년, 주요 글로벌 기업의 ‘AI 확산’ 발 해고 뉴스들
이런 상황에서, 누구라도 “AI 기술이 더 확산되면 나도 직업을 잃게 되는 거 아닌가?”하는 걱정을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겁니다. 그런 톤의 기사들도 뭐 너무 많이들 보실 테구요. “AI의 발전 때문에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 반대편에서 AI 때문에 새로이 생겨나는 직업들도 많을 거다”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분명히 있지만, 그런 말도 실제 ‘AI로 인해서 내 직업이 위협받고 있다’는 두려움을 갖는 사람들에게 당장 큰 위로가 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비단 기사만이 아니죠. 유튜브 알고리즘이 저한테 보여주는 유튜브 영상 제목들 중에 몇 개만 볼까요?
"고소득자도 피할 수 없다" AI 시대에 가장 먼저 대체될 직업은 '이것'입니다
"AI, 의사부터 대체할 것"…AI가 대체 못할 직업은?
청년들의 일자리는 곧 AI로 대체된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가져올 충격적 위기😱
사람을 왜 채용하죠? AI 쓰면 되는데? 빠르게 인간의 직업을 대체하고 있는 인공지능 괜찮나요?
AI 시대에서 살아남으려면 갖춰야 할 능력
"AI는 개발자를 대체할 수 없어요" 14년 차 당근 리드 개발자님의 하루
AI가 분석한 AI가 대체할 직업 vs 살아남을 직업
"이 직업만 살아남는다." AI가 대신할 수 없는 마지막 영역
'몇 년 남지 않았다' 대체될 것인가 살아남을 것인가 'AI와 미래'
심지어는, 2019년 튜링상 수상자이자 ‘딥러닝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제프리 힌튼 교수도 최근 인터뷰에서 다가오는 AI 시대의 직업에 대한 물음에 “배관공이 될 수 있게 준비하라”는 말을 하기도 했더라구요 ^.^;
AI와 직업 지형도를 보다 정교하게 바라보는 렌즈
위에 나열한 것과 같은 뉴스, 기사, 동영상에서 이야기하는 내용들을 새겨들어야 할 필요가 물론 있겠지만, 제가 보는 관점에서는 대부분 “AI가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을까?”, “아니, 새로운 일자리가 더 많이 생길 거야” 하는 식의 질문과 답변으로 지나치게 단순화된 반복입니다. 직업(Occupation)이라는 건 고정되어 있는 블록이 아니라 수많은 작업(Task)들의 집합이고, 새로이 등장한 기술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서 이 중의 일부를 대체하고 일부를 강화합니다. 그러면서 직업을 구성하는 작업들이 변화, 진화하게 되고, 결국 직업의 지형도가 변화하게 됩니다.
그래서, 한 번 “이 직업이 대체될까?”라는 식의 이분법적 접근법을 잠깐 내려놓고, “이 직업을 구성하는 작업 중에 어떤 작업이 기술에 노출(Exposure)되어 있고, 어떤 작업이 AI가 사람의 전문성(Expertise)을 계속해서 요구하나?”라는, 좀 더 정교하고 구체화된 질문을 시작해야 합니다.
바로 이런 질문에서 출발한 것이, MIT의 데이비드 오터 (David Autor) 교수가 제안한 Exposure/Expertise 프레임웍이고, 이 글을 통해서 간략하게 한 번 소개할까 합니다.

MIT에서 노동경제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데이비드 오터 교수
Exposure/Expertise 프레임웍
‘Exposure/Expertise 프레임웍’이라는 용어를 데이비드 오터 교수가 만들어서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Does automation replace experts or augment expertise? The answer is yes’ (2024년), 그리고 ‘Expertise’ (2025년) 등의 논문에서 이런 개념을 적용해서 AI와 같은 신기술이 도입, 확산되면서 직업, 고용, 임금 등에 어떤 구조로 영향을 주는가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용어 | 정의 |
---|---|
Exposure | 특정한 작업(Task)이 AI 또는 자동화 기술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 기술적 노출도 |
Expertise | 해당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인간 고유의 판단력, 해석력, 감정 이입, 맥락 이해 등 고차원적 역량 |
Task | 하나의 직업(Occupation)이 구성된 구체적인 작업 단위. 직업은 여러 Task의 묶음 |
Employment | 해당 작업 또는 직업군에서 고용 규모의 변화 (증가/감소) |
Wage | 해당 작업 또는 직업군의 임금 수준 변화 (상승/하락) |
지금 ‘AI와 일자리’, ‘AI와 직업’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Exposure’를 이야기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게 현실이죠 - “AI(또는 AI 에이전트)가 이 직업을 대신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지?”하는 이야기 말예요.
그렇지만, 냉정을 유지하면서 정말 AI 기술이 우리의 일, 직업,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더 정교하게 추적하고 판단하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야 Exposure를 넘어서 Exposure와 Expertise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의 결과로 고용(Employment), 임금(Wage) 등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예측하고 AI의 시대를 준비하는 작업이 제대로 될 수 있을 테니까요.
Exposure/Expertise 프레임웍으로 바라본, AI 기술 도입의 영향
Exposure와 Expertise의 수준, AI와 같은 신기술이 등장하면서 생기는 Task의 변화, 그 결과로 나타나는 고용(Employment), 임금(Wage)의 변화를 요약해서 정리하면 아래 표와 같습니다:
Exposure | Expertise | Task 변화 | 고용의 변화 | 임금의 변화 | 사례 |
---|---|---|---|---|---|
낮음 | 낮음 | 변화 없음 또는 느림 | 유지 또는 감소 | 유지 또는 하락 | 단순 반복 노동 (예: 기본 보안, 청소) |
높음 | 낮음 | 완전 대체 | 감소 | 하락 | 데이터 입력, 단순 분류 |
높음 | 높음 | 일부 자동화, 역할 재편 | 유지 또는 증가 | 유지 또는 상승 | 은행 텔러, 의료 전문가 |
중간~낮음 | 높음 | 기술 보완 (AI 기반 생산성 증가) | 증가 | 상승 | 컨설턴트, 연구원 |
높음 | 중간 | 탈전문화 → 누구나 가능 | 초기 증가 후 감소 | 하락 | 기초 콘텐츠 작성, 단순 고객 응대 |
각각의 행(Row)별로 의미하는 바를 조금 더 풀어서 써 볼께요:
✅ Row 1. 낮은 Exposure / 낮은 Expertise
‘기술에 쉽게 대체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인간 고유의 전문성이 많이 요구되는 것도 아닌 작업’
이런 일은 기술적으로 자동화하는 것도 쉽지 않고, 동시에 고부가가치도 아님
그래서 당장은 안정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생산성이나 효율성 측면에서 관심 밖에 놓이게 됨
장기적으로 보면, 산업의 변화나 효율성 압력에 의해 점진적으로 감소하거나 임금이 정체될 수 있는 업무임
예시: 건물 경비, 주차 안내 등으로 – 자동화 되긴 어렵지만 전문성도 낮고, 점점 '축소될 수밖에 없는 종류의 일'
✅ Row 2. 높은 Exposure / 낮은 Expertise
‘기술에 쉽게 대체될 수 있고, 인간의 전문성도 거의 요구되지 않는 반복적인 업무’
가장 먼저, 가장 확실하게 AI를 비롯한 자동화 기술에 의해서 대체될 수 있는 영역
Exposure는 높고 Expertise는 낮으니, 기술이 들어오면 사람은 밀려난다는 구조가 가장 명확하게 작동하는 곳임
고용도 줄고, 임금도 하락하고, 직무 자체가 시장에서 퇴장할 가능성도 높음
예시: 단순 데이터 입력, 기계적 서류 분류, 규칙 기반의 고객 응대
✅ Row 3. 높은 Exposure / 높은 Expertise
‘기술에 일부는 대체되지만, 인간 고유의 전문성이 함께 필요한 직무’
업무에 포함되는 단순한 반복적 작업은 AI가 처리할 수 있지만, 전체 업무의 핵심은 인간의 판단력과 해석력에 있는 업무
결과적으로, 직무가 완전히 사라지기보다는 재편(Restructured) 됨
업무의 구성은 바뀌지만, 사람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고용도 유지되고 임금도 지켜지거나 오히려 오를 수도 있음
예시: 은행 텔러 – 입출금은 ATM이 하지만, ‘상품 추천’과 ‘고객 응대’가 더 높은 가치로 인간의 몫으로 재정의됨. 의료 영상 판독 – AI가 이상 징후를 먼저 탐지하지만, 종합적인 판단은 여전히 의사가 맡음
✅ Row 4. 중간~낮은 Exposure / 높은 Expertise
‘기술로 쉽게 대체되기 어렵고, 인간의 해석력·창의력이 핵심인 직무’
기술이 이 직무를 대체하지 않고, 오히려 보완해 주는 역할로 포지셔닝됨(Augmentation).
반복적인 작업을 AI가 처리해 주면, 인간은 더 고차원적 분석이나 창의적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구조가 핵심인 업무
이로 인해서 생산성도 오르고, 임금도 오르는 구조로 이어짐
예시: 경영 컨설턴트, 연구원, 데이터 분석가 – GPT가 기초 요약·분석을 대신해 주면 더 전략적인 인사이트를 도출하고 고객과의 관계를 관리하는 데 집중 가능
✅ Row 5. 높은 Exposure / 중간 Expertise (탈전문화)
‘AI가 고급처럼 보였던 업무를 평준화시켜 누구나 할 수 있게 만든 경우’
특정한 전문성이 필요했던 작업이 AI에 의해 템플릿화되고 자동화되면서, 이제는 초보자나 비전문가도 쉽게 수행할 수 있는 업무가 됨
초기에는 해당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나기 때문에 고용은 늘 수 있지만, 점점 임금은 낮아지고, 경쟁이 치열해지고 직무의 희소성과 전문성은 희석됨
예시: 콘텐츠 초안 작성, 마케팅 카피, 기본적 법률 문서 생성 – GPT가 대중화되며 누구나 할 수 있게 된 영역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건, 바로 ‘전문성과 작업(Task)이 고정된 속성이 아니라, 기술의 도입에 따라서 유동적으로 변화한다’는 겁니다. 같은 직무라도 기술이 어떤 방식으로 도입되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역할이 더 고차원적인 판단과 감독 중심으로 바뀔 수도 있고, 반대로 표준화된 도구를 통해서 비전문가도 수행 가능한 작업으로 단순화될 수도 있습니다.
또, 기술은 개별 작업만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직무를 구성하는 작업의 조합 자체를 해체하고 재조합해서, 새로운 직무를 설계해야 할 필요성을 만들어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직무의 이름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어떤 작업들이 포함되어 있고 그것이 어떻게 바뀌는가라는 거죠.
이런 관점에서 볼 때, Exposure/Expertise 프레임워크는 정적인 분류 체계가 아니라 직무가 기술 도입 이후 어떤 경로로 진화할 수 있는지를 예측하는 동적 경로 모델로 이해해야 합니다. 단순히 현재의 위험 수준을 평가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람의 재교육 가능성, 새로운 도구를 활용하는 능력, 문제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 역량이 향후 Expertise 수준을 바꾸는 핵심 요인이 됩니다. 따라서 정책이나 인사 전략을 설계할 때는 "이 일이 지금 어떤 Task로 구성되어 있는가?" 뿐 아니라, "이 일이 기술에 의해 어떻게 재편될 수 있는가?"에 대한 통찰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Image Credit: 튜링 포스트 코리아
사례: ATM의 등장, 그리고 북미 은행산업 및 창구직원 직무의 변화
그럼, 위에서 이야기한 Exposure와 Expertise의 프레임웍, 그리고 (자동화) 기술의 도입과 함께 벌어지는 ‘직무 변화 Path’를, ATM이 등장하고 난 뒤 북미 은행산업, 그리고 창구직원 직무에 벌어진 일을 통해서 한 번 살펴보죠.
이 부분은, 제가 전에 브런치에서 쓴 ‘인공지능은 정말 우리의 직업을 빼앗아갈까? - 2편’의 내용을 Exposure/Expertise 프레임웍을 기준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 섹션에서는, 북미 ATM 확산 사례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ATM의 등장과 확산이 은행 산업의 전환 과정에서 어떻게 주요 이해관계자의 전략적 선택에 영향을 주었는지, 그 결과 어떻게 ATM 숫자와 은행 창구직원 숫자의 관계가 단순한 대체관계가 아니라 보완적 관계가 되었는지, 그리고 ‘은행 텔러’라는 직무가 어떻게 변화하게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기술과 우리들의 직업 사이의 관계는 단순한 '대체' 관계가 아니라 특정 활용의 '비용'과 '가치'에 대한 고려, 사업자의 전략적 선택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좌우하는 복잡한 함수 관계이며, 결과적으로 (물론) 직무(직업) 자체의 대체도 일어나지만 그에 못지않게 '특정 작업을 보완'해주면서 기존 직무의 내용이 바뀌거나, 심지어 새로운 직무가 나타나기도 하게 된다는 점을 확인해 보고자 합니다.
ATM의 간략한 역사

Image Credit: Jan Antonin Kolar on Unsplash
ATM은 스코틀랜드의 발명가 존 셰퍼드 배런이라는 사람이 발명했다고 합니다. 존 셰퍼드 배런은 인쇄업을 주업으로 하는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이 사람이 목욕을 하다가 장소와 상관없이 어디서든 돈을 찾을 방법이 있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자신이 좋아했던 초컬릿 자판기와 비슷하게 초컬릿 대신 돈이 나오게 하는 식으로 기존 자판기의 원리를 은행의 입출금 용도로 응용하는 아이디어를 생각했다고 해요. 이 이야기가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부력의 원리를 깨닫고 유레카!라고 외쳤다고 하는 이야기하고 비슷한 점이 있어서, 존 셰퍼드 배런 또는 후세가 만들어낸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그렇다고 합니다.
이 아이디어를 (현재도) 영국에 본사가 있는 금융회사 바클레이스에서 “아 일리가 있네” 라고 생각을 하고 존 셰퍼드 배런을 채용하게 됩니다. 그 이후에 바클레이스에서 ATM 기기의 발명에 투자를 했고, 1967년 6월 27일 런던 북부 엔필드 지점에 설치한 바클레이스의 ATM 기기가 세계 최초의 ATM 기기입니다.
ATM은 1990년대를 지나면서 급속하게 보급이 확산되고 지금까지도 널리 사용되고 있죠. 우리나라에서는 신한은행에 합병된 조흥은행이 1979년 조흥은행 명동지점에 설치한 ATM 기기가 한국 최초의 ATM 기기라고 합니다. 은행 점포가 증가하면서 ATM 기기도 계속 증가했고, 2017년 통계를 보면 시중 은행 6곳이 보유한 ATM기기가 전국적으로 3만 4천여 대가 비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수치는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인데, 인구 천 명당 ATM 기기가 2.4대 있는 셈입니다. 물론 디지털, 모바일화의 흐름, 그리고 은행 점포의 축소라는 추세와 함께 ATM 기기는 현재는 감소세에 있습니다.
ATM 기술 vs. ‘은행 텔러’ 직무의 다이나믹스
ATM 기술과 관련된 은행 텔러의 업무를 보면, ‘입출금’이라는 정형화되고 반복적인 작업(Task)이고, ATM은 이 작업을 기계가 대신하게 만든 전형적인 자동화 사례라고 볼 수 있죠:
자동화된 Task: 현금 인출, 입금, 계좌 확인 등
기계에 적합한 조건: 고빈도, 낮은 리스크, 표준화 가능
따라서, ATM의 등장은 은행 텔러의 업무 중 가장 반복적인 부분이 ‘기술에 노출되었다(High Exposure)’는 것을 의미하고, 이런 조합은 보통 직무 감소 및 임금 하락이 쉽게 일어날 수 있는 구조라고 생각하게 되겠죠.
항목 | 분류 | 설명 |
---|---|---|
Exposure | 높음 (High) | ATM이 Teller의 반복 업무(Task)를 직접 대체함 |
Expertise | 중간 이하 (Low–Medium) | 입출금 등은 고난도 판단이 아닌 규칙 기반 작업 |
Task 변화 | 강함 | 반복작업 자동화 → 사람의 역할 축소 |
ATM이 널리 퍼져가면서, 실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은행 텔러’라는 직업이 금새 사라졌을까요?

데이터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연구 결과를 한 번 보죠. 미국에서는 처음 ATM이 설치된 것이 1971년이었습니다. 이때부터 ATM이 급격하게 증가해서 2009년도에는 40만 대에 육박하게 됩니다. 당시에 ATM을 전략적으로 확산시킨 배경은, 가장 기본적으로는 규제 때문에 점포의 확산이 용이하지 않은 지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ATM을 사용했던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은행가들은 ATM이 텔러를 중심으로 한 점포의 직원 규모를 줄임으로써 비용을 절감하는 방법이 되겠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파악했습니다. 당시 웰스 파고의 부회장이었던 리차드 로젠버그는, ATM을 위시로 한 Electronic Transaction의 확대가, 은행 점포의 수 자체를 줄일 뿐 아니라 남아있는 은행에서 일하는 직원도 급격하게 줄일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에 ATM의 보급이 급격하게 확산되는 가운데서도 텔러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소폭이지만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이 시기에 은행 점포의 총숫자도 물론 증가하기는 했지만, 그 증가의 양상이 선형적이었기 때문에, ATM의 본격적 보급이 대규모의 은행 창구직원의 직업을 없애는 결과를 낳았다면 이런 그래프는 나올 수가 없겠죠.
이런 결과는 그렇다면 왜 나오게 된 것일까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요.
우선은, ATM이라는 기계가 텔러가 수행하던 업무를 일부 대체하게 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텔러라는 직업의 수요를 그만큼 더 만들어내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도시 지역을 기준으로 했을 때 은행 점포 하나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직원의 수가 1998년에는 20명 정도에서 2004년에는 14명으로 줄어들었지만, 이것을 거꾸로 보면 은행 점포를 새로 하나 만들어서 사업을 확대하는데 드는 비용도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1998년에서 2004년 동 기간 미국 도시 지역의 은행 점포 수도 약 45% 증가하면서 ATM의 확산으로 줄어든 만큼의 텔러 수를 Offset 하게 됩니다.
또, ATM의 확산과 함께 은행 업무의 편의성이 제고되면서 은행 거래의 규모 자체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와중에, ATM이 잘 처리하지 못하는 업무들을 다루기 위한 텔러들도 여전히 필요했고, 물론 상당수의 고객은 ATM 기계를 사용하기보다 텔러와 얼굴을 맞대고 은행 업무를 보는 것을 더 선호하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 ATM이 확산되는 이 시기에 미국에서 주로 주(State) 별로 규제를 시행했던 은행 산업의 지역적 바운더리가 해체되기 시작했고, 따라서 ATM 등의 기술을 기반으로 한 규모의 경제를 시현하면서 은행 산업의 경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시기였습니다. 당연히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고 기존 고객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 치열했고, 어떤 은행은 ATM을 텔러를 완전히 대체하는 수단으로 본 반면에 또 다른 은행은 텔러를 고객 대상의 서비스 및 세일즈 팀의 일원으로 변화시킴으로써 고객 일인당 수익을 제고하는 방향에서 더 큰 전략적 가치를 발견하기도 한 것이죠. 즉, - 비록 같은 이름으로 불리기는 하지만 - 일종의 '새로운 직업'으로서 텔러의 역할에 변화가 생긴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ATM 기술 등장 이후 ‘은행 텔러’ 직무의 변화 Path가 말해주는 시사점
이렇게, ATM의 발명이라는 이벤트를 전후로 기술과 인간의 직업 간의 관계를 살펴보면, AI라는 기술과 인간의 직업 간의 관계를 예측하는 데 있어서 참고할 수 있는 몇 가지 시사점이 있습니다.
먼저, Exposure/Expertise 프레임웍으로부터 ‘은행 텔러’ 직무의 변화 Path를 바라보면, ATM의 도입은 은행 텔러의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작업을 자동화했지만, 직무 자체를 사라지게 하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남은 업무—신규 계좌 개설, 대출 상담, 고객 민원 등—은 더 높은 판단력과 정서적 소통 능력을 요구하게 됐고, 이에 따라서 텔러는 단순 계산원이 아닌 고객 응대 중심의 복합형 전문가로 역할이 재편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Task 구성이 재조정되었고, 직무명은 유지되었지만 실제 역할은 ‘금융 상담사’나 ‘서비스 세일즈 전문가’에 가까운 성격으로 재정의된 것이죠.
이 사례는 Exposure가 높더라도 Expertise가 함께 유지되거나 강화되면 직무는 진화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전문성은 고정된 속성이 아니라 기술 변화에 따라 이동하는 유동적 자산이며, 기술이 직무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 대체가 아니라 조직의 전략, 재교육, 직무 설계에 따라 다양하게 분기됩니다.
은행 텔러의 변화는 AI 시대에도 적용 가능한 유효한 시사점을 제공하는데요, 바로 AI가 단순히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식의 이분법이 아니라,작업 수준의 미시적 변화 → 직무 구성의 구조적 변화 → 직업 전체의 본질적 재구성이라는 연속적이고 점진적인 과정이 벌어지는 것이며, 우리는 이 전체 경로를 이해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는,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특히 산업과 그 안에 존재하는 직업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AI 기술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어떤 일을 ‘대체’한다는 것이 1:1의 교환 가치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믿고 이해해야 합니다. 어떤 특정 ‘작업’을 기술로 대체하게 되면, 반드시 그 작업을 둘러싼 전체 업무의 경제성(Economics)이 변하게 되고, 그에 따라 해당 작업을 둘러싼 주변 작업의 가치와 수요가 올라갑니다. 이 과정에서 단순한 Automation의 기회뿐 아니라 사람이 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업무를 도와주는 Augmentation의 기회, 그리고 더 나아가서 새로운 사업 기회 등 다양한 ‘기회’의 스펙트럼이 등장하게 되고, 그 안에서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기존에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생겨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방향의 업무 역할과 직무의 변화가 일어난다면, 특정한 직무의 임금은 오히려 AI 같은 기술의 도입으로 상승할 수도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는, 기술의 파급력이 클수록 이러한 변화는 상당히 장기간에 걸쳐 일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위의 ATM 사례를 보면, ATM 때문에 텔러라는 직업이 없어질 것이라는 예측은 1980년대 초반에 등장했지만, 단지 기술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규제의 변화, 경제 성장, 문화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서 모바일과 디지털 기술이라는 그다음 세대의 기술이 메인스트림으로 확산되고 있는 지금 시점에, 과거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이유로 은행 점포가 사라지면서 텔러의 규모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 시간 동안, 사회 구성원 전반이 기술에 기인한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면밀하게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AI는 지난 수십 년간 우리가 적응해 온 기술들과는 너무나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이에 대한 장기적인 관점의 교육 내용, 교육 방식 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AI 기술이 가져올 양면성, 즉 그 효익과 대가가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기술 변화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러다이트 운동을 촉발시켰던 산업혁명 시기로부터 19~20세기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그로 인한 기술 실업은 크고 작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어 왔는데, 이 과정에서 승자들은 기술 변화의 양면성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면서, 장기적인 관점의 기술의 효익보다 단기적인 부작용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을 고리타분한 반 기술주의자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소위 ‘기술 실업’이라는 파도에 휩쓸린 사람들은, 안타깝지만 일부 사회집단이 단기적으로 감수해야 할 피해로 인식됩니다.
문제는, 과거의 기술 등장에 따른 실업이 일부 사회집단이 감수해야 할 피해에 머물렀다면, AI를 위시한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면서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대가는 그 누구도 피하기 어려운 물결로 다가올 것이 확실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AI 시대를 리드할, 평범한 엔지니어보다 수십 배, 수백 배의 성과를 내는 최고의 연구자나 엔지니어, 또 기업가 정신을 갖춘 소수의 창업자를 길러내기 위한 노력만큼, 단기적으로 이 변화에 따르는 어려움을 온몸으로 받아내게 될 중간 정도의 숙련도 및 저숙련도에 해당하는 직업군에 자리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이들의 ‘업’을 보호하면서 AI를 도입할 수 있는 원칙과 환경, 전략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기업에서 AI 기술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물어야 할 질문은 “어떻게 하면 인력을 줄일 것인가?”가 아니라, “AI를 도입하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 회사의 인력들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사업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이어야 합니다. 또한 이 도입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현장 인력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니즈가 반영된 AI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AI 기술을 통해서 우리가 그려가야 할 미래는, 유토피아도, 그렇다고 디스토피아도 아닙니다. 이상향을 뜻하는 유토피아의 어원은 ‘어디에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디스토피아가 유토피아에서 파생된 반대말이라면, 그 뜻은 아마도 ‘어딘가에는 또는 언젠가는 있을 법한’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어쩌면 그 때문에 자꾸만 우리들은 AI 기술이 가져올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떠올리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유토피아에 가까운 미래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노력이 필요합니다. 디스토피아적 대결 구도를 벗어나서, 인간과 AI 기술의 협업을 통해서 새로운 사회적 가치, 새로운 직업들을 많이 만들어내는 미래를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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