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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당하는 우리의 '뇌': 정보 홍수의 시대

여러분들, 스마트폰에서 아주 다양한 앱을 쓰시죠? 저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제 스마트폰에 있는 앱들을 정리하면서, 인스타그램, 틱톡, 핀터레스트 앱을 삭제했습니다. 몇 가지 뉴스 앱들도 삭제했구요. 그리고 이메일로 뉴스들을 보내주는 구독 서비스도 몇 개 찾아서 해지했구요.

우리 모두는, 이제 정보가 너무나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게다가 AI 기술의 발전이 이런 흐름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질문 하나만 던지면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쏟아내고, 클릭만 몇 번 하면 수백 개의 기사, 요약, 댓글, 동영상, 논문 등이 한꺼번에 눈 앞에 펼쳐집니다.

문제는, 이 정보들이 모두 똑같이 신뢰할 만한 것도 아니고, 우리 뇌가 감당할 수 있는 양도 아니라는 점일 것 같습니다. MIT의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주의력은 디지털 환경에서 평균 47초마다 분산되게 되고, X(구 트위터) 같은 SNS 플랫폼에서 인기있는 사용자는 우리가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을 넘는 정보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어서, 아주 빠르게 정보 과부화 상태에 빠지고 결국 리트윗 확률이 줄어든다고 해요.

정보가 많다는게 곧 더 나은 결정으로 이어지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정보가 많으면 선택의 질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정신적인 탈진, 스트레스를 유발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여러 가지 연구들이, 정보 과부하의 영향을 정량적으로 입증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미국 직장인들의 경우에는 주당 약 4시간을 불필요한 정보 탐색과 처리에 낭비하고 있다고 하고, 결과적으로 연간 약 9,000억 달러 규모의 생산성 손실이 발생한다고 하는데요, 제 짐작으로 우리나라는 더하지 않을까요? (물론, ‘생산적이지 않다’고 평가되는 정보 탐색이 모두 ‘낭비’라고 단순히 이야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사람 뿐 아니라, 최근에는 금융 분야의 AI에서도, 입력 컨텍스트가 지나치게 많으면 오히려 예측 정확도가 떨어지는 현상이 관찰되었는데, 이것도 ‘정보는 많을수록 좋다’는 전제가 무조건 맞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게 아닌가 싶어요.

이렇게 정보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우리 사람들의 인지적인 한계를 압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뭘 보고 있고 뭘 놓치고 있는지’조차 자각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일본 교토의 Cross Labs를 이끌고 있는 Olaf Witkowski 박사가 ‘현대 사회의 정보 과부화 현상이 사람의 사고, 그리고 사회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통찰한 글을 공유하고자, 튜링 포스트 코리아의 Community Twist 섹션을 통해서 소개합니다.

Olaf Witkowski 박사 약력과 주 연구분야

Olaf Witkowski 박사는 일본 교토에 위치한 AI 연구기관 Cross Labs의 창립자이자 연구 디렉터로, AI와 Artificial Life(인공생명), 그리고 AI Ethics 분야의 선도적 연구자입니다. 도쿄의 대표적인 AI 기업 Cross Compass의 연구 이사이자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도쿄대학교 대학원에서 정보과학 강의를 맡고 있을 뿐 아니라, 도쿄공업대학 Earth-Life Science Institute의 연구원,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정기 방문 연구원 등 다양한 국제 연구 기관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Olaf와 그의 팀은 인간, 그리고 AI 시스템의 지능을 수학적으로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고 신뢰할 수 있는 AI의 설계, AI 윤리, 다양한 인지적 존재 간의 보편적 상호작용 메커니즘을 탐구하는 데 연구의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특히, 인간과 기계, 그리고 하이브리드 지능이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확장될 수 있는지, 그리고 AI가 인간의 능력을 어떻게 증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이론 및 실제적 응용으로까지 적용할 수 있는 연구 방향을 추구합니다.

정보 과부하의 시대

끝없는 스크롤, 무의식적인 소비: Scroll, Snack, Repeat

우리 모두는 지금 정보가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정보’는, 현대적인 가공식품처럼 풍부할 뿐 아니라, 우리가 가진 모든 ‘약점’을 공략하도록 아주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컨텐츠가 우리의 주의(Attention)를 끌기 위해서 최적화될수록, 우리의 인지 패턴은 점점 더 쉽게 장악당하게 됩니다. 디지털 플랫폼은, 단순히 주의를 분산시키는데 그치는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것에 주목하고 어떻게 사고하는지를, 그 기제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고 맙니다.

인류의 역사라는 관점에서는, 한때 우리의 생존을 도와주었던 ‘인지 패턴’ - 자유의 에너지와 새로움을 추구하던 본능 - 은, 이제 끝을 모르는 스크롤, 기술에 대한 스트레스 (Technostress), 그리고 정신적인 영양실조라는 굴레 속에 우리를 가두고 있습니다. 더 심각한 건, 이런 시스템들이 우리들의 참여 - ‘Engagement’의 의미 정도라고 봐야겠죠 - 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점점 더 정교하게 최적화될수록, 인류의 성장을 위한 ‘진실되고 영양가 있는 아이디어를 찾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쩌면 지적인 생명체가 마주하게 되는 ‘대(大)붕괴 필터(Great Filter)’의 초입에 서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Great Filter’를 ‘대붕괴 필터’로 번역한 건, 이 개념이 단순한 진화적 난관이나 기술적 한계가 아니라, 문명 전체가 진보의 어느 지점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붕괴하거나 소멸하게 만드는 근본적 장벽을 의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Olaf의 글에서는 정보 과부하와 인지 왜곡이 인류 집단지성의 퇴행을 불러오고, 그것이 지속되면 문명의 지속 가능성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맥락이 강조되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 필터는 단순히 ‘지나가기 어려운 관문’이 아니라, 통과하지 못하면 대규모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결정적 위험 요소로서, 그 의미를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서 ‘대(大)붕괴 필터’라는 표현을 선택했습니다.

편집자 주

짙은 안개에 둘러싸인 절벽 끝에 위태롭게 홀로 서 있는 한 남자. Image Credit: 튜링 포스트 코리아

이런 엄청난 도전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아마, 넘쳐나는 정보를 감당할 수 있게끔 ‘인지적 능력’을 급격히 키우거나, 마음, 그리고 심리를 위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면역 체계'를 구상해서 만들어 내거나, 또는 타인의 정신을 열심히 돌아보는 사회적인 배려와 연민의 감정을 빠르게 확산시키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을 겁니다. 어쩌면 이제는, 이 세 가지 방향 모두를 동시에 탐색하고 추진할 수밖에 없는 시점에 도달했는지도 모르죠.

정보 과잉의 시대, 인간은 ‘인간의 본능’을 노리는, 조작된 디지털 정보의 홍수에 놓여 있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신력, 인지 면역 체계, 그리고 공동체적 연민을 강화해야 한다.
Image Credit: Olaf Witkowski

디지털 중독, 그리고 메말라가는 마음 - 어텐션 이코노미의 그림자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건, 최근에 과학 커뮤니케이터이자 작가인 행크 그린(Hank Green)이 발표한, ‘인터넷을 담배에 비유해야 할지 음식에 비유해야 할지’에 대한 사색 - 유튜브 영상 - 에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인데요. 이 영상은 ‘중독’, 그리고 ‘정보 과잉’의 시대에 대한 통찰력있는 생각이었어요.

행크는, 결국 ‘음식의 비유’에 더 가까운 결론에 도달합니다. 인터넷은 담배처럼 백해무익한 존재라고 볼 수는 없죠. 오히려 현대의 식품 환경 - 고도로, 엄청나게 가공되고, 지나치게 맛있게 설계된 제품들이 넘쳐나는 - 과 그 다이나믹스가 더 유사하다는 겁니다. 인터넷에서 우리가 습득하는 정보들 중에는 영양가 있는 정보도 있지만, 솔직히 대부분의 경우는 그저 ‘우리의 삶을 장악하겠다’ - ‘Share of Mind’라는 근사한 표현으로 중화되죠 - 는 목표를 가지고 설계된 컨텐츠들입니다.

이런 아이디어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물론 아닙니다.

1973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한 동물행동학자 니코 틴버겐(Niko Tinbergen)은, 동물의 본능적 행동이 초정상 자극(Supernormal Stimuli) - 본래는 생존에 유익했던 자극을 과장한 형태 - 에 의해서 아주 쉽게 유도될 수 있다는 걸 실험으로 보여줬습니다(Tinbergen, 1951). 니코는 실제 알보다 더 크고 인공적인 가짜 알을 새들이 더 선호하거나, 붉은 색깔의 배를 강조한 모형 물고기를 수컷이 공격하거나, 인공의 나비 모형이 짝짓기 행동을 유발하는 실험 등을 통해서 이를 입증했습니다.

철학자 다니엘 데닛(Daniel Dennett, 1995)도 이런 초정상 자극이 어떻게 진화적으로 형성된 욕구를 쉽게 탈취(Hijack)할 수 있는지를 설명한 적이 있죠. 우리의 뇌는 특정한 신호에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미처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채 쉽게 조작될 수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초콜릿은 고열량 음식을 찾도록 진화한 본능을 자극하는 ‘강화된 버전’이고, 그 결과 과일이나 채소보다 초콜릿같은 더 단 음식을 더 선호하게 됩니다. 둥지를 튼 새는 실제 알보다 과장된 가짜 알을 더 좋아하고, ‘귀여움의 과다(Cuteness Overload)’는 아기 같은 얼굴(큰 눈, 둥근 얼굴, 작은 코)에 반응하도록 설계된 우리의 ‘보살핌 본능’을 자극합니다. 포르노그래피는 성적 신호를 과장해서 진화적으로 형성된 번식 본능을 장악하고, 결국 자연스러운 접촉보다 더 강력한 반응을 유도합니다.

인류는, 생물학적인 역사의 대부분을 ‘한 조각의 지식조차 생존에 중요했던 정보 부족의 환경’에서 진화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우리는 정보화 시대의 중심에 들어섰고, 디지털 정보는 노벨상 수상자 니코 틴버겐이 말한 ‘초정상 자극’이 되어서 우리의 모든 생각과 결정을 쉽게 조종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인터넷과 함께 이 지점에 도달해 있습니다. 인류의 생물학적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우리는 정보가 아주 희소한 환경에서 진화해 왔고, 그 시절에는 단 하나의 지식이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던 때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우리는 정보화 시대라는 고속도로의 중앙 차선에 서서, 긴급하거나, 자극적이거나, 분노를 유발하도록 설계된 콘텐츠의 폭풍을 끊임없이 맞고 있습니다(Carr, 2010; McLuhan, 1964).

물론 ‘인포택시스(Infotaxis)’처럼, 정보를 따라가는 본능적 탐색 행동 자체가 본질적으로 나쁜 것은 아닙니다.

‘인포택시스(Infotaxis)’는 박테리아가 화학물질의 농도 차이를 따라 움직이는 ‘케모택시스(Chemotaxis)’처럼, 인간이 정보를 향해 본능적으로 반응하며 탐색하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이런 정보 추적의 본능은 원래 생존에 유익한 전략이지만, 오늘날 디지털 환경에서는 이 본능이 조작된 자극이나 가짜 정보에 쉽게 노출되어서 오히려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됩니다.

편집자 주

오히려, 데닛이 말한 음식, 성, 돌봄 본능처럼 유익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환경이 우리의 인지 능력이 적응할 수 있는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게 바뀌었고, 바뀌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생존에 유리했던 이런 본능들이, 이제는 끝없는 스크롤 속에서 우리가 ‘영양가 있다고 판단되는’ 지점을 훌쩍 지나칠 때까지 멈추지 못하게 만드는 겁니다.

아담 올터(Adam Alter, 2017)가 설명하듯이, 오늘날의 플랫폼은 ‘설계된 중독(Designed Addiction)’, 즉 끊임없는 새로움을 제공하면서도 사용자의 주체성을 약화시키는 맞춤형 경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편, 쇼샤나 주보프(Shoshana Zuboff, 2019)는 감시 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가 이런 인간의 취약성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이용하고, 그 관심을 전례 없는 규모로 수집하고 수익화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보다 앞서 BJ 포그(BJ Fogg, 2003)는 설득 기술(Persuasive Technology)이 어떻게 태도와 행동을 바꾸도록 설계될 수 있는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의 습관을 미묘하지만 강력하게 재구성할 수 있는지를 설명한 바도 있구요.

결국, 우리가 직면한 핵심적인 문제는 이겁니다. 이 시스템들이 ‘참여(Engagement)’를 극대화하면 할수록, 정작 진실하고, 유익하고, 사고를 맑게 하고 삶에 도움이 되는 정보에 접근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사실입니다. 겉보기에는 무한한 지식의 뷔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산만함, 조작, 정신적 공허함이 가득한 미로에 가까운 거라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컨텐츠가 넘쳐나는 이 풍요 속에서는 가장 이로운 아이디어일수록 찾기 어렵고, 가장 쉽게 무시됩니다.

’진실을 향한 길’을 지킨다는 것

잠시 눈과 귀를 멈추고, 지금 온라인에서 정보를 검색하는 일이 얼마나 터무니없이 어려워졌는지를 한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분명히 여러분들 중 어떤 분은, 예전의 인터넷, 그러니까 한 번 본 기사나 사진, 인용문 같은 걸 어렵지 않게 다시 찾을 수 있었던 시절을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정보의 양이 압도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정보를 다시 찾는 일이 더 쉬웠던 것도 사실이예요.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조작된 콘텐츠가 넘쳐난다는, 그런 구조적 요인도 그 이유 중 하나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사실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합니다: 단순히 '본 것을 다시 찾기 어렵다'는 수준을 넘어서, 이제는 무엇을 믿을 수 있는지조차 판단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졌습니다. 유용한 정보를 끝없는 ‘신상’ 콘텐츠 속에 묻어버리는 바로 그 플랫폼들이, 한때 우리가 신뢰도를 판단하는 데 사용하던 신호들 - 출처, 맥락, 권위 등 - 마저도 함께 지워버린 겁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이제 거짓 정보와 진짜 통찰 사이의 경계가 거의 사라진 바다 위를 떠다니고 있는 셈입니다.

“여기서는 같은 자리에 있으려면 계속 달려야 해.” – 붉은 여왕(Red Queen)
광고에 기반한 소셜미디어의 사이버 공격, 그리고 우리의 정신 건강을 지키려는 노력/시스템 사이에도 엎치락 뒤치락 하는 ‘붉은 여왕의 경주’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Image Credit: Olaf Witkowski

그렇다면, 대체 우리는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 걸까요?

저는 크게 세 가지 방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우리의 인지 능력을 증강하는 것이죠. 더 나은 도구를 만들고, 공유된 지식 시스템을 구축하고, 신호와 잡음을 구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개인적인 실천 방안들을 규정하고 체화해 나가는 겁니다. 이 방향은, 광고를 위한 ‘정신적 사이버 공격’과,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려는 방어 시스템 간의 끊임없는 진화 경쟁(Red Queen’s race) 위에서 작동합니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아주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현실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이건 마치 암호학(Cryptography)의 길과 같은 것이죠.

두 번째 방향은, 신호 자체를 감추는 겁니다. 우리가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서로 주고받는 인지적 경로나 소통 채널을, 다양한 ‘지역적 은폐 전략’과 ‘혼란화 기제’를 통해서 숨기는 방식이죠. 실제로 우리 몸의 면역 체계도 암호학적인 원리에 기반하고 있고(Krakauer, 2015), 외부나 내부의 기생적 위협으로부터 주요 기능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고 복잡하게 만들어서 방어합니다. 항원 모방, 화학적 위장을 위한 잡음, 바이러스의 항원 가리기(Epitope Masking) 같은 생물학적 과정들은 모두 핵심적인 정보를 감추는 방식으로, 즉 생명체의 자유 에너지에 대한 접근을 제한함으로써 ‘보호’라는 작업을 수행합니다. 물리적 기반의 비대칭성을 활용해서 벽을 세우는 보호 전략은 비용이 아주 클 수는 있지만, 때로는 정보 채널을 개방성과 투명성을 희생하더라도 은밀하게 유지하는 게 더 저렴하고 효율적인 대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두 번째 경로는 스테가노그래피(Steganography), 즉 은폐의 기술입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방향은, 인간과, 그리고 우리가 함께 세상을 만들어가는 생물적 혹은 인공적 존재들 간의 신뢰와 돌봄을 증진시키는 겁니다. 누구든 서로의 정신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의 신체를 보호하고 치유하는 법을 배운 것처럼, 이제는 서로의 마음도 보호하고 회복시키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건 인간과 비인간 에이전트가 함께 진화하면서 공감, 공동 책임, 신뢰를 공유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조작적 시스템과 포식적인 유인이 우리의 취약성을 더 이상 쉽게 악용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입니다. 이 주제는 제가 박사 논문에서 다룬 중심 내용이기도 했구요. 저는 경쟁하는 에이전트들의 집단이 결국 신뢰와 협력을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근본 원칙과 실질적 조건을 탐구했습니다. 해답은 우리의 사회적, 기술적, 경제적 제도의 구조를 재구상해서 상호간의 돌봄에 기반한 방향으로 재정렬하고, 심리적 안전을 개인과 세계의 수준에서 함께 중시하는 다양한 문화적 혼합을 조성하는 데 있습니다. 이게 바로 돌봄(Care), 연민(Compassion), 사회적 회복력(Social Resilience)의 길입니다.

우리는, 이제 막 이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문화적 도구를 만들어가기 시작한 단계에 있는 셈입니다. 이 다이나믹스를 규명해 내고 이해하는 것 - 우리의 주의력(Attention)이 어떻게 조작되는지, 그리고 그게 왜 진실에 도달하는 일을 어렵게 만드는지를 이해하는 것 - 이 작업이 첫 번째의 걸음입니다.

어쩌면, 이제는,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인터넷이 담배인가, 음식인가?’가 아닐 겁니다. 그 단계를 지나, 진짜 물어야 할 것은 우리가 공허한 칼로리와 진짜 영양분을 구분해낼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할 수 있는가입니다. 너무 많은 것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서로가 서로의 성장을 도울 수 있을지가 진짜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정신을 지키는 기술: 돌봄과 성찰로 맞서는 디지털 공격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의 중심에 ‘기술’을 던져 넣곤 합니다. “ChatGPT 같은 도구를 활용해서 정보의 소비를 관리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식이죠. 저 역시 AI가 우리의 멘토 역할을 해주는 것에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그런 형태는 분명 많은 가치를 지니고 있고, 저 자신도 현재 성찰적 교육(Mindful Education)맞춤형 멘토십을 위한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고 실험하는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우리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중대한 위험 또한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이 새로운 대리자(Proxies)들 역시 너무나 쉽게 탈취(Hijack)당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탈옥(Jailbreak), 시스템 탈취, 중간자 공격(Man-in-the-Middle Attack)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말이죠. 거대 언어모델(LLM)은 아직 아주 취약합니다. 그리고 - 저 자신이 암호학을 기반으로 공부를 하고 훈련을 받아왔고, 현재 LLM의 사이버 방어 분야에 막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인데요 - 앞으로도 꽤 오랜 시간 동안 그 취약성이 유지될 가능성이 큽니다.

사실 LLM이 우리 손에 쥐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요? LLM은, ‘시간’이라는 검증조차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고 봐야겠죠. 우리의 생물학적인 인지 알고리즘은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보호 구조와 면역 체계를 통해서 단련되어 왔습니다. 우리의 생물학은 자기 노출, 부상, 세균, 해로운 박테리아, 바이러스, 그 외 수많은 형태의 위해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여러 겹의 방어막 위에 성립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매일 죽음이나 고통을 끊임없이 걱정하면서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이구요.

하지만 기술은 다릅니다. 기술은 새로운 질병이 침투할 수 있는 새로운 벡터이고, 그 중 상당수는 아직 정체조차 파악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정보 과잉의 시대, 우리 모두의 정신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교육은 정말 빠르게 진화해야 합니다.
Image Credit: Jamie Gill / Getty Images

정말 빠르게 변화하는 이 세상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위협에 대처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인터넷. 엔터테인먼트. 건강한 삶의 방식. 우리가 아이들을 키우는 방식. 교육의 전반적인 설계 자체가 진화해야 합니다.

이제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 무한한 정보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분별력, 회복 탄력성, 공동체적인 돌봄을 키워주는 기관 - 그런 새로운 형태의 학교가 필요합니다. 더 이상 어제의 문제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본능이 끊임없이 조작되는 세계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고 항해하는 법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성찰, 호기심, 집단적 지혜는 정신적 영양실조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가장 강력한 방어 수단이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기술 속의 삶 - 기술적 삶(Technolife)에 ‘돌봄’, 그리고 ‘성찰’을 통합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기술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기술과 맞서 싸우기보다는 기술과 공생(Symbiosis)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사회와 그를 둘러싼 기술 환경(Technosociety)이 점점 더 강력하고 침습적으로 작동하는 시대에, 돌봄(Care)성찰(Reflection)을 중심적인 가치로 삼는 ‘정신적 안전지대’ 내지는 ‘지속 가능한 틈새 환경’의 구축과 성장을 촉진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도와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정신, 그리고 마음을 돌보는 사회적 장치를 함께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참고자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보셨다면 친구와 동료 분들에게도 뉴스레터를 추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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